앵커멘트] 대지진과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일본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30만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입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내 외국인 유학생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어학교 등에서는 장학 제도를 확대하는 등 유학생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박철원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3.11 대지진 이후 21일간 일본을 떠난 외국인 47만 명 가운데 7만 명은

유학생이었습니다. 지난 4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90%에 가까운

유학생들이 일본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녹취:장웨이, 중국 따리엔 (21세)] "중국에서 뉴스를 보니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저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공포와 불안을 느꼈습니다.

일본에 와서 보니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신학기의 유학생 유치 규모가 원전 사고 등의

영향으로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오는 2020년까지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야심찬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정원이 340여 명인 한 일본어학교입니다.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능 공포로 인해

무려 200여 명이나 결원이 발생하면서 비상이 걸렸습니다.

학교 측은 고심 끝에 가을 신학기 유학생 전원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기로 하는 등

이른바 당근책을 내놨습니다.

[녹취:고이즈미 요시아키, 일본어학교 교장] "이번부터는 일본에 유학하고자 하는

학생 모두에게 장학금이라는 형태로 지원을 하려고 합니다."

18만 명에 달하는 일본어학교 졸업생의 70%가 일본 내 대학 등으로

연계 진학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일본어학교 유학생의 축소는

연쇄적인 유학생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원전 사고 장기화에 직면한 일본 당국도 안전 중시 차원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유학생 지원책을 내놓는 등 전면적인 정책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입니다. 도쿄에서 YTN 박철원입니다.

 

출처 : 일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생사모)
글쓴이 : poodl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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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도우면 빨갱이에게 도움 된다?"

  

일본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조선학교의 아이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 모임을 결성한 김명준 영화감독.
ⓒ 유성호

"지진 직후 2~3일 정도는 거의 패닉이었죠. 동포들이 트위터로 안부를 주고받는 걸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되던 11일 오후 김명준(41)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2007년 영화 <우리학교>를 통해 해방 이후 일본 땅에서 한국의 역사와 말, 문화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온 조선학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 인물이다.

 

김 감독은 현재 '몽당연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몽당연필은 '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재일동포 및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조선학교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배우 권해효, 가수 이지상·안치환씨가 몽당연필 공동대표를 맡았다.

 

"국적?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는 해줘야죠"

이날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에 있는 노래패 '우리나라' 사무실로 김 감독을 찾아갔을 때, 김 감독은 '몽당연필' 관련 작업으로 분주해 보였다.

 

"대지진 발생 후 (한국에서) 모금 운동이 많이 벌어졌지만 정작 조선학교를 비롯한 동포 사회의 문제는 많이 다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학교 등과 인연을 맺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 답답해서 몽당연필로 뭉친 겁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우리 취지입니다."

 

김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조선학교의 지진 피해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일단 (재일동포들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교육받을 때부터 재일동포들의 삶에 대해 배웠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조선학교를 돕자'는 이야기를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북한=빨갱이를 돕자'는 걸로 보는 의식의 흐름이 여전히 우리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김 감독은 이 대목에서 한 방송사의 보도에 대해 말했다.

 

"지진 피해를 겪은 도호쿠 조선학교 지역을 취재한 것이었어요. 총련 동포들이 보낸 구호물자를 (도호쿠 지역 동포들이) 일본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을 내보내면서 민족학교라고만 표기하고 '총련, 조선학교'라는 언급은 뺐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김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국적이 어디인지는 (조선)학교 안에서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조선학교에 오는 건 일본에서 우리 말과 문화, 그리고 민족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남한 혹은 북한과 가깝기 때문에 택한다'는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 2002년 제가 도쿄 조선학교에 처음 갔을 때, 어느 방송사 기자가 학생들에게 묻더군요. 조선적(재일동포 가운데 해방 후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택하지도,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인지, 한국 국적인지, (귀화해) 일본 국적인지. 그건 (조선)학교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들의 국적은 선생님들만 알고 참고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국적이 어디냐를 보지만, 동포들은 조선 사람이냐 아니냐를 봅니다."

 

아이들의 국적을 따지는 데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조선학교에는 한국 국적 아이들이 절반이 넘고 일본에 귀화한 재일동포 아이들도 다니고 있다"(몽당연필 제안서).

 

"우리는 국적을 보지만 동포들은 조선 사람인지 아닌지를 봅니다"

 

일본 지진 피해를 겪고 있는 조선학교의 아이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 모임을 결성한 김명준 영화감독이 미야기현 센다이시 '도후쿠 조선초중급학교'의 사진을 보여주며 피해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한때 540개가 넘던 조선학교는 현재 80여 곳 정도가 남아 있다. 그중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이번 대지진이 발생한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도호쿠 조선학교다.

 

"상태가 심각합니다. 건물이 완전히 휘었어요. 교실 바닥이 기울어져, 공을 놓으면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굴러갑니다. 벽의 타일도 떨어지고 텔레비전들도 파손됐어요. 교원실(교무실) 벽도 무너졌고 기숙사도 심하게 파손됐습니다. 측량사가 와서 상태를 보더니 '요주의: 출입 제한'이라는 표시를 붙이고 갔을 정도입니다." (도호쿠 조선학교의 자세한 피해 상황은 몽당연필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김 감독은 "기숙사 중에서 그나마 성한 곳을 임시로 교원실과 교실로 쓰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건물인 데다 파손 정도가 심각"해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할 형편이라며, "(새 건물의) 기둥이라도 하나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 몽당연필 제공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 몽당연필 제공

도호쿠 조선학교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조선학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김 감독은 "건물 자체의 파손 문제보다는 원전 폭발로 인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조선학교에서는 피폭 위험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친척집으로 대피한 이들이 생겨나면서 4월 3일 23명의 학생 중 15명만 등교했다고 김 감독은 전했다. 또한 김 감독은 "원전 폭발로 위험한 상황인데도 조선학교 선생님 등 10여 명은 학교에 남았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동포들이 조선학교로 보내오는 구호품을 받아, 각자의 집에 머물고 있던 동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이바라키현의 조선학교도 여진 위험을 안고 있다. 이어 김 감독은 "지진으로 손상된 도쿄 조선학교의 강당 천장도 수리해야 한다"면서도 "미야기현과 후쿠시마현 쪽에 살던 동포들 중 기반을 잃은 이들이 많고 도호쿠 조선학교가 가장 많이 파손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쪽을 우선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학교. 안전 문제를 우려해 '요주의: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 몽당연필 제공

"휘어진 학교 건물... 기둥이라도 하나 세워주고 싶습니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주춤하긴 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대지진 이후 일본을 돕기 위한 성금을 냈다. 대한적십자사에 모인 금액만도 371억 원이 넘는다(10일 오후 6시 기준). 이렇게 모인 성금은 일본 정부와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이재민 지원에 쓰이고 있다.

 

김 감독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기 위해 성금을 낸 마음이 너무나 좋게 보인다, 인류애라는 측면에서 당연히 도와야 한다"며 "일본 국민들에게 골고루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조선학교가 일본 정부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제때에,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김 감독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조선학교에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이 없다"며 "다만 조선학교 건물을 공식 피난처로 지정해 일본 사람들도 그곳에 머물게 되면서 일본 정부의 지원 물자가 들어온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몽당연필 측은 "한국 정부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총련 동포들 및 학교를 잃은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구호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김 감독은 그러한 소식이 아직 일본 정부로부터도 들려오지 않고 있으며, 이와 달리 총련은 북한이 지원한 50만 달러의 구호자금을 총련 소속이든, 민단 소속이든, 일본으로 귀화했든 상관없이 재일동포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일본 지진 피해 성금 모금 현황을 알리는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화면.
ⓒ 대한적십자사

일본 일부 지자체, 대지진 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김 감독은 "일본에 여러 외국인 학교가 있는데 만약 지원 대상에서 조선학교만 뺀다면 국제 문제가 될 것이고, 일본 정부도 이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일본의 일부 지자체의 움직임을 우려했다.

 

"일본의 고교 학비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만 제외됐잖아요? 그 문제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극우 성향의)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작년에) 깃발을 들었어요. '(조선학교에 대한) 지자체 보조금 지급을 동결(중단)하겠다'고. 도쿄에 이어 오사카와 지바도 보조금을 동결했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이번 대지진 후 미야기와 사이타마에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동결했다는 거예요. 이에 대해 항의하니 두 가지 이유를 댔다고 하더군요. 지진 때문에 조선학교의 보조금 문제를 논의할 정신도 없고 돈도 없다, 그리고 현(縣)민 정서가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더군요."

 

김 감독은 일본 지자체에서 근거로 제시한 '현민(주민) 정서'에 대해 의견을 달리했다.

 

"지진 발생 후 각지의 재일동포들이 (미야기현) 도호쿠 조선학교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지원 물자를 보냈어요. 동포들은 그 물자를 주위에 있던 일본 사람들과 나눴고요. 동포들 본인들은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서, 주먹밥 수백 개를 만들어 일본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 사람들도 감동했다고 하고요. 그런데도 미야기현 당국이 '현민 정서'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이와 관련, 김 감독은 조선학교가 세워진 이래 일본 당국의 냉대와 핍박이 이어졌지만 이것만으로 조선학교와 일본 사람들의 관계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60여 년간 조선학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동포들의 힘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지원 활동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선학교 어느 곳을 가든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일본인 모임'이 있습니다. 이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관공서의 차별에 항의하며 학교를 도왔습니다."

 

또한 김 감독은 "일본 정부나 북한과 별개로, 한국에서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을 기억하고 우리 몫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돈의 액수가 아닙니다. 재일동포들, (그동안 온갖 고난을 극복한 것처럼 이번에도) 스스로 일어설 힘이 있는 분들입니다. 중요한 건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 한국에서도 이렇게 나섰구나. 우리가 그동안 (한국의 역사와 말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온 길이 그릇되지 않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김 감독은 "영화 <우리학교>를 본 많은 분들이 '(상황을) 몰랐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며, 이번에도 그때처럼 상황을 공감하는 이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조선학교를 생각해주세요"

 

몽당연필은 이처럼 "조선학교와 재일교포를 기억하기 위한"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다. 매달 각각 1번씩 콘서트와 문화 행사를 열어 "한 달에 2번 정도는 조선학교를 생각할 수 있게" 할 예정이며, 이러한 활동을 최소한 1년은 이어갈 계획이다. 첫 번째 콘서트는 27일(수) 오후 8시 서울 중구의 웰컴시어터에서 열린다. 몽당연필은 5월부터는 매달 세 번째 수요일 오후 8시에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아울러 몽당연필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도 이미 시작했다. 11일 오전까지 약 520만 원이 모였다고 한다. 몽당연필은 행사 수익금과 성금을 모아 일본에 있는 비영리단체인 '우리학교'에 직접 전할 예정이다. '우리학교'는 재일동포 상공인들이 만든 단체로 2008년 7월 1일 발족했다.

 

인터뷰 내내 궁금했던 점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감독 김명준에게 '우리학교'(조선학교)란 어떤 존재일까.

 

"제 결혼식을 <우리학교>를 찍은 홋카이도 조선학교 강당에서 했어요. 동포들이 재일교포 식으로 결혼식을 준비해주셨죠. 저와 우리학교, 그리고 동포들은 그런 관계입니다. 가족이죠. 어느 곳에 있는 (조선)학교를 가든 고향에 간 느낌이 들어요. 동포들은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친척 같고요.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겪는 느낌이죠. (조선)학교에 갔다 오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neostrik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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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시험 54만명이 시험을 치르다....

정식명칭으로는 대학입시 센터시험인 센터시험은 첫날인 17일 [공민][지리역사][국어][외국어]의 4과목의 시험이 있었고, 둘째날은 [이과][수학]이 치러졌다.

금년의 지원자는 작년보다 596명 많은 54만 3981명으로, 그 중에 공민이 30만 5639명(수험률 56.2%), 지리역사는 35만 9936명(동 66.2%), 국어는 48만 4884명(동 89.1%)이 시험을 쳤다.

가장 피크였을때는 60만명을 넘었던 지원자수는 출생률저하와 함께 감소하여, 금년은 작년에 이어 55만명에 도달하지 못했다.

센터시험을 이용하는 대학과 단기대학의 수는 수험생확보등의 이유로 매년 증가하여서 올해는 과거 최대의 797개 학교가 되었다.

 

센터시험은 1월 13일 이후의 첫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치르어지는 대학입학을 위한 시험이다.


대학시험을 보던 것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나는 학력고사 세대이고 다른 친구들은 그후 수능이 되었다가 하는등 우리나라의 수험제도도 많이 바꾸어서 오히려 수험생들과 선생님들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참치등을 경매하는 츠키지시장은 아침일찍부터 500명 가까운 외국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인데 매너를 지키지 않아서 관계자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견학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외국인인데 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래쉬촬영을 한다든가 참치를 만진다든가등 경매를 방해하는 매너 위반자가 많아서 도쿄도가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12월 15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아침 일찍 열리는 경매의 견학은 중지되었고, 각 관계단체에 통보를 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가실려고 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출처 : 일본여행동아리 (J여동^^)
글쓴이 : 이 기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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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토 카이라쿠엔(偕樂園)

 

 

 

 

미토 번 제9대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창설한 카이라쿠엔(偕樂園)은 가나자와의 겐로쿠엔(兼六園), 오카야마의 고라쿠엔(後樂園)과

더불어 일본 3대 정원중 한곳으로 손꼽을만큼 아름다운 정원으로, 특히 이른 봄철에 피는 3,000그루의 매화가 유명한 곳입니다.

 

 

 

카이라쿠엔(偕樂園)이 위치한 미토시는 도쿄 우에노역에서 죠반선 특급으로 한시간가량 떨어진곳에 위치한 이바라키현의 현청소재지로,

미토(水戶)라는 이름처럼 물의도시, 호반의 도시로 이름난 지역입니다.

 

 

 

미토역에서 카이라쿠엔까지는 버스로 15분, 도보로 30분정도 걸리는데요,,,

센바코(千波湖)와 사쿠라가와(さくら川)를 따라 난 길을 걸으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워낙 아름답기에, 꼭 걸어가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사쿠라가와로 가실분은 미토역 남쪽출구로, 버스로 가실분은 미토역 북쪽출구로 나가세요~

(참고로 카이라쿠엔은 지도상의 카이라쿠엔역 바로 위에 위치해 있으며, 카이라쿠엔역은 임시역으로 매화마쯔리 기간에만 열차가 정차합니다.)

 

 

 

 

 

 

 

 

 

 사쿠라가와의 모습.

 역시 벚꽃개천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멋진 풍경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설명드렸듯이 카이라쿠엔은 미또의 9대 번주인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1842년에 만든 정원으로,
다른 정원과는 달리 '카이라꾸'라는 이름처럼 '백성과 다함께 즐긴다'는 이념으로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그 이념 그대로 지금도 무료로 개방되고 잇는 곳이라 더욱 즐거운~ 정원이기도 하구요^^

더구나 이 매화가 단순히 관상용이 아니라 춘궁기와 전시를 대비한 비상식량(매실을 식량으로 쓰기도 하나보네요,,,) 으로 쓸 수 있도록 재배한거라고 하니,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비록 일본사람이긴 해도 정말 존경할만한 위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 3대정원이라는 명성처럼 정원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한데요,,, 

 아무래도 매화를 빨리 보고싶단 마음에,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매화정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코우분테이에 들어섰습니다.  
코우분테이는 카이라쿠엔 한켠에 지어진 3층짜리 정자이자 도쿠가와 가문에서 다실로 쓰였던 건물로, 카이라쿠엔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곳입니다.

 

 

 

 

 

코우분테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몇마디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3월무렵에 도쿄에 가실 에정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꼭(!) 카이라쿠엔을 방문하세요~~

 

 

 

 

 

 #매화 개화기간 3월초순~중순

 

 

#벚꽃 개화기간 - 4월초순

 

#개원시간

3/1 ~ 9/30       오전 6시 ~ 오후 7시

10/1~2월말      오전 7시 ~ 오후 6시

 

#입장료

카이라쿠엔은 무료,  코우분테이 대인 190엔, 소인 100엔

 

#홈페이지

http://www.koen.pref.ibaraki.jp/park/kairakuen01.html

 

#관련 여행기

50만원으로 떠나는 일본일주 2.1 3.000그루 매화향이 홀로 아득한 미토의 카이라쿠엔(1) http://blog.daum.net/yohwoni/6182427

50만원으로 떠나는 일본일주 2.2 3,000그루 매화향이 홀로 아득한 미토의 카이라쿠엔(2) http://blog.daum.net/yohwoni/6182434

11.1 다시찾은 매화의 천국 - 미토의 카이라쿠엔 http://blog.daum.net/yohwoni/7995481

11.2 카이라쿠엔의 매화마쯔리 http://blog.daum.net/yohwoni/7995482

 

 

 

 

 

 

 

- 오카야마 고라쿠엔(後樂園)

 

 

 

 

 

 

우죠(烏城ㆍ까마귀성)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오카야먀성의 후원으로 조성된 고라쿠엔은 오카야마번의 영주 이케다 쓰나마사가 1700년에 완공한,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입니다.

 

참고로, 고라쿠엔은 "근심을 먼저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린다"란 뜻이라고 하네요.

 

 

 

 

 

고라쿠엔의 중심은 사와노이케(澤之池)로, 연못에는 섬 3개가 아름답게 떠 있습니다.

각각 섬의 다실이 있는 중지도, 낚시터가 있는 미노시마 섬, 휜 모래톱과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지리지마 섬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차밭으로, 차의 종류는 약간 떫은 맛이 강한 옛품종이라네요.

 

 

 

 

 

 

 

고라쿠엔은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이 넘치는 정원으로, 잔잔한 연못 주위을 둘러보며 한가로움을 느끼게에 아주 제격이었습니다.

 

 

 

 

 

#개원시간

4/1 ~ 9/30     오전 7시 30분 ~ 오후 6시

10/1 ~ 3/31    오전 8시 ~ 오후 5시

 

#입장료

대인 350엔, 소인 140엔

 

#홈페이지

http://www.okayama-korakuen.jp/top.cgi

 

#관련 여행기

50만원으로 떠나는 일본일주 7.2 일본 3대 정원 -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http://blog.daum.net/yohwoni/6182587

 

 

 

 

 

 

 

- 카나자와 겐로쿠엔(兼六園)

 

 

 

 

겐로쿠엔은 에도 시대, 번주의 임천회유식(林泉回遊式)정원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공원입니다.

 

5대 쓰나노리(綱紀)로부터 13대 나리야스(齊泰)까지 약 170년간 정원조영에 많은 재산을 들였으며 정원의 이름은

광대(廣大), 유수(幽邃), 인력(人力), 창고(蒼古), 수천(水泉), 조망(眺望)의 뛰어난 6가지 요소를 겸비하고 있다는 것에서 명명됐습니다.

 

역에서 겐로쿠엔까지는 도보로 25분정도고,,, 버스는 안타봐서 잘 모르겠네요^^;

 

 

 

이곳도 고라쿠엔과 마찬가지로 카나자와 성의 후원으로 만든 정원인지라, 카나자와 성과 곧바로 이어져 있습니다.

 

 

 

 

 

 

 

 

 

 

 

 

일본 3대정원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는 정원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이곳 겐로쿠엔을 꼽고 싶습니다.

특히 눈이 오는 겨울철이 겐로쿠엔의 절정이라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쯤에 올런지 모르겠네요^^

 

 

 

#개원시간

3/1 ~ 9/15      오전 7시 ~ 오후 6시

9/15 ~ 2월말   오전 8시 ~ 오후 4시 30분

 

#입장료

대인 300엔, 소인 100엔

 

#홈페이지

http://www.pref.ishikawa.jp/siro-niwa/kenrokuen/

 

#관련 여행기

17.1 가나자와의 아침  http://blog.daum.net/yohwoni/7995505

17.2 일본 최고의 정원 - 카나자와의 겐로쿠엔   http://blog.daum.net/yohwoni/7995506

 

 

출처 : 훌쩍 떠나고픈 어느날
글쓴이 : 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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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7월이 시작되었네요. 금년도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소식도 잘 안 올리다가 간만에 올리게 되네요.
오늘부터 일본은 전국에서 taspo(타스포)라는 카드가 없으면 담배자판기에서 담배를 구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3월에 카고시마현, 미야자키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도입된 이 카드는 미성년자의 흡연방지를 목적으로 성인이 아니면 발급이 되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카드를 신청하게 되고 신청으로부터 2주정도후에 우편으로 도착하게 됩니다. 시간이 걸리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그렇게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전 흡연자의 24%정도가 발급을 받았다고 하니 아직까지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고, 편의점등에서 살 수가 있으니 그렇게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것보다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담배값을 현행의 300엔전후에서 1000엔까지 올리려는 움직임이 더 문제가 되겠지만요.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을 탄생시킨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멘트(SCE)의 久多良木健(쿠타라기 켄) 회장겸 최고경영책임자(CEO)가 19일, 56세의 나이로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나운 야생마]의 별명을 갖고 있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쿠타라기씨의 은퇴는 소니의 체질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12월 초대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쿠타라기 켄 회장 겸 최고 경영책임자


쿠타라기씨는 1975년 4월 소니에 입사,

1993년 11월 SCE설립,

1994년 초대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1999년 4월 쿠타라기씨 SCE사장 취임

2000년 3월 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매

2000년 6월 쿠타라기씨, 소니 임원에 취임


2003년 4월 쿠타라기씨, 소니 부사장에 승격

2004년 5월 플레이스테이션의 출하 1억대 돌파

2005년 4월 쿠타라기씨 소니 부사장을 퇴임, SCE사장에 전념

2005년 11월 플레이스테이션 2의 출하 1억대 돌파

2006년 11월 플레이스테이션 3를 발매

 


2006년 12월 쿠타라기씨 SCE회장에 취임

2007년 6월 쿠타라기씨 SCE의 명예회장에.....


PS의 제일 처음의 기계가 발매되기 수년전, 닌텐도와의 공동개발에 관련된 일을 하던 쿠타라기씨는 소니의 게임기의 히트를 느끼고, 게임사업에의 참여를 열심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소니의 수뇌진은 이것을 무시했다. 그래도 자신의 신념을 믿고, 끈질기게 설득한 것이 주효해, 大賀典雄사장(당시)으로부터 해보라는 언질을 들을 수 있었다. 닌텐도의 우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3차원 화상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승부를 했다.플레이스테이션은 예상외로 히트를 해서 플레이스테이션 2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2억대 이상을 출하함으로써 워크맨의 소니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PS3도 새로운 기술등을 도입하였으나, 같은 시기에 발매된 닌텐도의 Wii에 밀려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한 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이번에 퇴임하게 되었다.

대단한 결단력과 끈기를 가지고 지금의 SCE를 키워낸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12월 4일에 매년 연말에 발표되는 그해의 히트상품을 스모의 서열에 빗대어 발표하는 행사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발표가 있었다.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발표가 되었는데, 이것도 스모의 서열표에 의거한 것이다.

동쪽의 横綱(우리나라 씨름의 천하장사정도)는 「ニンテンドーDS Lite」と対応ソフト였다. PS3가 발표되고 Wii가 발매되었지만, 닌텐도 DS Lite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히트의 이유로는 첫째, 터치팬을 이용한 사용하기 편리함과 조작성, 게임매니아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 침투하기 쉬웠던 점. 두번째는 脳を鍛える大人のDSトレーニ ング」로 대표되는 뇌를 단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중고년의 마음을, 그리고「おいでよ 動物の森」등의 소프트웨어가 여성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서쪽의 横綱는 이번에 해당 상품이 없었다. 그만큼 히트한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서쪽의 大関에 랭크된 mixi이다. 2005년 12월에 200만명이었던 회원수가 2006년 11월에는 660만명으로 급성장했다. 최대의 특징은 이미 가입한 사람의 소개가 없으면 입회할 수 없는 것이다. 종래의 인터넷은 익명성이 강해서 자신이 조심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커다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mixi는 소개라고 하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안심감이 생겼다.블로그등과 틀려서 sns기능의 페이지로 자신이 관심이 있는 커뮤니티에서 자유롭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과 소개를 해 준 사람이 있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대 히트를 했다. 올해는 주식시장에도 상장을 해서 첫 가격이 200만엔을 넘었다.



 

mixi는 네이버등에서도 소개시켜달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초대도 많이 해 주었다. 위의 사이트는 내 믹시는 아니다. 예를 들었을 뿐이다.

내년에는 어떠한 상품들이 히트를 하게 될까?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일본 에버그린사가 22일 발표한 개의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광학마우스 [DN-601][DN-602] [DN-603]를 발표, 직판사이트인 [上海問屋]에서 발매하기 시작했다. 가격은 2980엔씩.
제일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마우스에 비해서 크다. 버튼/호일의 조작도 독창적으로, 어디를 보아도 버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좌우 클릭은 본체전체를 좌우로 기울이는 것으로 실행된다. 호일버튼은 제일 밑에 보이는 커다란 링모양을 좌우로 회전시키면 상하 스크롤이 된다고 한다. 사이즈는 88*88*120mm. 중량은 약 160그램. 대응 OS는 Windows 2000/Professional/XP이다.
일본에서 이제부터는 필름카메라를 찾아보기 힘들게 생겼다. 물론, 전체적인 흐름이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카메라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던 Nikon이 1월 11일에 필름카메라를 두종류만 남겨놓고 철수하기로 결정을 하고 얼마있지 않아서 코니카미놀타도 디지털카메라부분을 소니로 넘기고 카메라부분의 철수를 발표했다.
니콘이 앞으로 생산하는 필름 카메라는 필름카메라로서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F6와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문기로 정평이 있는 FM10만이다.



継続して生産、販売するフィルムカメラボディー、マニュアルフォーカス交換レンズ



カメラボディー

F6、FM10

マニュアルフォーカス交換レンズ

AI ニッコール 20mm F2.8S、AI ニッコール 24mm F2.8S、AI ニッコール 28mm F2.8S
AI ニッコール 35mm F1.4S、AI ニッコール 50mm F1.2S、AI ニッコール 50mm F1.4S
AI マイクロニッコール 55mm F2.8S、AI マイクロニッコール 105mm F2.8S
PC マイクロニッコール 85mm F2.8D
그외의 매뉴얼포커스 렌즈도 위의 기종만 남기고 생산종료가 된다.




코니카미놀타사도 3년전에 합병을 한 이후로 업적이 별로 좋지 않은 관계로 이번에 완전히 철수를 정했다. 코니카미놀타의 경우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화지를 만들었고, 칼라필름, 세계최초의 일안카메라를 개발하는등 역사있는 기업인데, 이렇게 카메라업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사진을 조금이나마 공부했던 나로서는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앞선다. 디지털이라는 파도앞에서 아날로그라는 바위가 산산조각나고 있는 것과 같다.
캐논도 1995년까지는 몇천억에의 적자를 보고 있었지만 셀방식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도입과 사원들의 노력에 의해서 지금은 빚이 거의 없는 기업으로, 그리고 디지털카메라에서도 발군의 업적을 보이고 있다.
어느쪽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여 더욱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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