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한국에 갔다 왔다. 재작년에 아이가 태어날때 여름에 다녀오고 나서는 아이와 와이프는 매년 들어갔다 왔지만,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내 휴가스케쥴등이 안 맞아서 못 들어가다가 이번에 처제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에 맞추어서 아이와 와이프는 먼저 들어가서 여러가지 일처리등을 하고 나는 그저께 업무를 마치고 바로 하네다로 직행.
밤 8시 비행기라 6시 30분정도까지 도착해서 수속밟고 안에 들어가니 7시가 되기 전이었다. 이제까지는 계속 나리타만 이용하다가 처음으로 이용하는 하네다공항은 정말로 한산했다. 국제선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것도 있고, 그 반면 시내까지의 교통이 좋다는 점에서 더 비싼 가격등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탄 비행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2시간정도의 여행으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서 처갓집에 도착한 것이 밤 12시. 지하철로 열심히 갔는데 김포공항과 정반대의 곳에 있는 관계로 그런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 안 자고 나를 기다려준 식구들과 특히 나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준 우리 딸아이의 웃음은 살인적이었다.
제대로 회포도 풀지 못하고 잠을 잔후 어제는 체제의 결혼식이라 아침부터 전 식구들이 머리하랴 옷입으랴 바쁜 오전시간을 보내고 결혼식을 올리는 성당으로 출발. 거기서 2년만에 아버지, 어머니를 접할 수 있었다. 나같은 불효자식이 있을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그런지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늙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내 부모는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내 부모도 장인,장모님도 연세를 드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인어른도 다리가 아프신 와중에도 우리 일을 신경써 주시고 장모님도 아이의 투정을 잘 받아주시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 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이를 낳아야 부모의 내리사랑을 안다고.......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았던 나는 그러한 것을 느끼기에는 많은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처제 결혼식도 무사히 끝나고 아버지,어머니는 먼저 집으로 가시고 나는 다시 처갓집으로 돌아와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식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갔다. 2년만에 찾는 고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조금 전이어서 그나마 부모님과의 짧지만 정담을 나눌 수 있었고, 집안일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듣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오전중에 와이프와 둘이서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집에와서 점심을 먹으니 공항으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 너무나도 짧았던 2박3일의 한국귀국이었다. 아이몰래 공항에서 헤어지는 것도 조금은 머리를 써야 했고(안 그러면 엄청 우니까.) .
집에 밤 9시쯤 도착해서 양쪽에 전화를 드리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아이의 모습은 나를 눈물나게 할 정도였다. 와이프도 중요한 사람이고 딸아이도 중요한 사람이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 틀린 것 같다. 와이프때도 헤어질때 눈물이 날 것 같더니 아이를 보는 느낌은 더욱 그렇다.
2주뒤에는 두 사람다 내 곁으로 오기 때문에 2주만 참으면 되지만, 매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마음도 허전하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 10년동안 어떻게 혼자 살았나 싶다.
얼른 2주 뒤가 되었으면...............
밤 8시 비행기라 6시 30분정도까지 도착해서 수속밟고 안에 들어가니 7시가 되기 전이었다. 이제까지는 계속 나리타만 이용하다가 처음으로 이용하는 하네다공항은 정말로 한산했다. 국제선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것도 있고, 그 반면 시내까지의 교통이 좋다는 점에서 더 비싼 가격등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탄 비행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2시간정도의 여행으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서 처갓집에 도착한 것이 밤 12시. 지하철로 열심히 갔는데 김포공항과 정반대의 곳에 있는 관계로 그런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 안 자고 나를 기다려준 식구들과 특히 나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준 우리 딸아이의 웃음은 살인적이었다.
제대로 회포도 풀지 못하고 잠을 잔후 어제는 체제의 결혼식이라 아침부터 전 식구들이 머리하랴 옷입으랴 바쁜 오전시간을 보내고 결혼식을 올리는 성당으로 출발. 거기서 2년만에 아버지, 어머니를 접할 수 있었다. 나같은 불효자식이 있을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그런지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늙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내 부모는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내 부모도 장인,장모님도 연세를 드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인어른도 다리가 아프신 와중에도 우리 일을 신경써 주시고 장모님도 아이의 투정을 잘 받아주시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 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이를 낳아야 부모의 내리사랑을 안다고.......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았던 나는 그러한 것을 느끼기에는 많은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처제 결혼식도 무사히 끝나고 아버지,어머니는 먼저 집으로 가시고 나는 다시 처갓집으로 돌아와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식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갔다. 2년만에 찾는 고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조금 전이어서 그나마 부모님과의 짧지만 정담을 나눌 수 있었고, 집안일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듣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오전중에 와이프와 둘이서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집에와서 점심을 먹으니 공항으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 너무나도 짧았던 2박3일의 한국귀국이었다. 아이몰래 공항에서 헤어지는 것도 조금은 머리를 써야 했고(안 그러면 엄청 우니까.) .
집에 밤 9시쯤 도착해서 양쪽에 전화를 드리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아이의 모습은 나를 눈물나게 할 정도였다. 와이프도 중요한 사람이고 딸아이도 중요한 사람이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 틀린 것 같다. 와이프때도 헤어질때 눈물이 날 것 같더니 아이를 보는 느낌은 더욱 그렇다.
2주뒤에는 두 사람다 내 곁으로 오기 때문에 2주만 참으면 되지만, 매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마음도 허전하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 10년동안 어떻게 혼자 살았나 싶다.
얼른 2주 뒤가 되었으면...............
'일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치냉장고를 사다........ (0) | 2006.05.20 |
---|---|
2006년 5월 4일 매년 열리는 몽골 페스티발의 한 컷 (0) | 2006.05.18 |
간만에 한국유학생들과의 술자리. (0) | 2006.05.10 |
오늘부터 본격적인 골든위크의 시작...... (0) | 2006.05.03 |
와이프와 아이가 한국으로 가다. (0) | 2006.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