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육아일기를 쓴다.

화요일부터 아이가 열이 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단순한 감기라고 해서 안심은 했지만, 열이 39도에서 40도를 넘어가는 바람에 와이프의 애간장을 태웠나 보다. 계속해서 해열제를 6시간 간격으로 투여를 해서 열이 내려가긴 했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다시 오르고 하였다.

그래도 아이는 열과 상관없이 잘 뛰어놀고 하더니 어제 저녁부터는 열이 내리고, 오늘 아침에는 미열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좋아졌다. 아이들이 더 똘똘해질려고 아픈것 같다.

이제 조금 더 성장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어제 저녁에 아내가 유치원의 엄마들과 저녁모임이 있어서 집에서 두 녀석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9시 넘어서 일이 나고 말았다. 한국에 나갔을때 밑의 녀석이 넘어지면서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혀서 피가 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밑의 녀석이 위의 딸아이에게 기차 장난감을 던져서 이마에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피가 난 것이다.


처음에는 형광등을 꺼놓아서 몰랐는데 방에 들어오자 마자 불을 켜니 딸아이의 이마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급히 지혈을 해서 보니 다행히 푹 파이지는 않고 조금 찍어진 뿐이어서 병원에 가야할지를 고민하였다. 처음에 아들녀석이 그랬을때는 많이 놀랬는데, 그나마 덜 놀라서인지 소방서에 전화해서 그 시간에 아이를 봐줄 병원을 알아보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걱정할 필요는 없고 손발이 떨린다던지, 속이 이상해서 토할 것 같으면 병원에 오란다. 이틀정도는 그냥 상태를 봐도 된다고 해서 그대로 집에서 소독과 함께 반창고를 붙혀 주고 말았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전과 같이 건강하게 놀고 웃고 하는 녀석을 보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얼마전에 교통사고 건도 있고 해서 점점 조심해져 가는 요즘이다.

딸아이가 올해부터 일본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같은 반 녀석들이랑 많이 친해진 것이 상당히 보기 좋다. 집에 와서도 자기 반의 누구와 친하고 누가 무엇을 하고 누구와 놀았고,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가 50여일을 자기 반 아이들과 떨어져 있었으니 많이 보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어제는 그런 아이들의 학예회가 유치원에서 열렸다. 딸아이가 집에 오면 어떤 춤을 추는지 한번 해보라고 시켰는데 여자 아이들이 하기로 한 魔女の宅急便의 키키 옷을 입고 전원이 춤추는 것이었는데 아이의 움직임에서는 전혀 그것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의문은 어제의 학예회를 보면서 풀렸다. 같은 반 아이들이라도 반에 따라서 남자,여자 아이들이 섞여서 하는 것과 우리 딸아이 반처럼 남자 아이 따로 하나의 공연을, 여자 아이들만의 공연 하나가 있었다.
우리 딸이 집에 와서 보여주었던 춤은 남자 아이들이 하는 공연의 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실제로 한국에서 돌아와서 2주정도밖에 연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한템포씩 늦는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잘 소화해 낸 것 같다.
제일 처음에 다른 반 아이들과 같이 나와서 노래를 두곡 부를때는 그렇게 열심히 부를 수가 없었다.
다른 학부모님에게 물어보니 오늘의 학예회의 자리를 맡으려고 새벽 일찍부터 줄을 섰단다. 그래도 앞의 두줄은 해당 반의 부모들이 번갈아서 앉을 수 있도록 해 주어서 아이의 공연때에는 맨 앞에서 비디오를 찍을 수 있었다.
운동회는 올해 참가를 못했지만, 운동회때는 전날 저녁부터 부모님이 줄을 서고 있었단다. 아무튼 내년에는 그렇게 해야 하니 힘들 것 같지만, 기뻐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래도 그런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세월이란 빠른 것 같다. 내가 결혼을 한 것도 5년 반 전의 일이고 그 사이에 딸아이와 아들녀석이 차례로 태어났다. 혼자서 타지에서 살다가 아내와 아이들 둘에 둘러싸여 지내는 날들이 나에겐 너무나 행복한 시간들이다. 요즘들어 일이 많아져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지 못하는 점이 미안할 뿐이다.

2년전 겨울에 아들녀석은 우리들 곁으로 찾아왔다. 딸아이때는 출산을 지켜봐주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아들녀석때는 그나마 출산때 있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녀석이 벌써 오늘로 만 두살이 됐다. 큰아이와 다르게 남자녀석이라서 그런지 한시도 자리에 앉아있지를 않고, 잽싸게 돌아다니는 것이랑 제 고집을 앞세워 하고 싶은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크게 울어 버리는 것으로 무기를 삼는 것등은 가르켜 주지 않아도 습득하는 것 같다.
이제는 제법 말을 할려고 하는지 조금씩 단어를 따라 하는 모습이라든가, 자기 의사표현을 조금은 할 수 있어서 크게 울어서 제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살그머니 다가와서 무엇을 해 달라고 그쪽으로 잡아 끄는 모습이 더욱 사랑스럽다.
어제 늦게 들어와서 힘든 와중에도 오늘 아침 일찍 아들녀석 미역국을 끊인 아내도 사랑스럽다. 이러한 행복이 한없이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 퇴근하는 나의 손에는 며칠전 예약을 해 놓았던 케잌이 들려 있을 것이다.

 

 1. 어디 한번 해 볼까?

 2.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3.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하렴!

 4. 실패했으면 다시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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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자

 6. 엄마(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7. 싸우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단다.

 8. 모든 것이 호박이라고 생각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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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무서울 때는 큰 소리를 내 보자

10.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도 용기란다

11. 남의 비웃음에 신경 쓰지 말아라.

12. 넌 훌륭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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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부드러운 네가 참 좋아

14. 웃으면서 이야기할 때가 올 거야

출처 : 귀농애(愛)
글쓴이 : 향기론 원글보기
메모 :

어제 저녁에 치과를 다녀오면서 아이스크림과 같이 배가 출출해서 크림빵을 사가지고 왔다.

아이스크림은 냉동고에 넣어놓고 크림빵은 김치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샤워를 하고 나와서 아이들이 다 잠든 후에 그 빵을 먹었다. 크림빵은 조그만 크기의 빵이 5개 들어있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도 그때 깨어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했다.

아빠, 크림빵 먹고 싶어......

크림빵이 어디 있는데?

이리 와봐...

그리곤 나를 이끌고 김치냉장고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 어제 여기 있었는데....어디갔지? 누가 먹었나?

아빠가 먹었지

아빠가 먹었어? 하나만 먹으면 되잖아?

아빠가 배가 고파서 다 먹었어...

2개만 먹으면 배 부른데.......

알았어, 미안해. 아빠가 이따 퇴근하면서 사다 줄께....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우리 딸내미는 아직 한글을 전부 읽지는 못하지만, 말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내가 상상도 못하는 대화로 내게 다가온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우리말을 알고 말하면서 그것을 나에게 전달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오늘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나에게는 크림빵이 든 비닐봉지가 있을 것이다.















4월부터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딸아이. 일본어가 조금씩은 단어를 말할 정도는 되지만, 아직 의사소통이 그렇게 원활하게 되는 정도는 아니라서 걱정이다. 구몬에 가서는 그래도 눈치로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유치원에 가서는 어떨지....
그저께는 그러한 것들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날이었다. 내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같이 가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오전중에 가서 설명도 듣고, 같은 반 아이들과 같이 그림도 그리고 했나 보다. 그런데 자기 소개도 아직 할 단계가 아니어서 그런 것도 힘들고, 많은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도 많은 부담이 되었나 보다. 자기 나름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집에 와서는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하루 지나고 나니까 유치원 가고 싶다고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많다. 6개월 정도 지나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 6개월동안 아이가 받아야 할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을지.....
아무튼 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딸, 화이팅.....
위의 딸아이때도 14개월을 모유수유하고 젖을 끊었는데, 이번의 아들녀석은 2주정도 빨리 끊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내가 쉬는 토요일, 일요일을 시작으로 모유 끊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니 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모유를 먹이지 않기 시작했다.
딸아이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2시간 정도 울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알아서 단념을 했는데 아들녀석은 밤중에 일어나서 30분정도 울더니 지쳐서 자는 건지, 울다가 자는 건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어제도 20분 정도만 울다가 잠이 들어서 오늘 아침까지 거의 깨지 않고 푹 자 주는 것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아직 어리지만 나름대로 스트레스도 상당히 받을텐데도 그렇게 잘 견디어 주고 하는 것이 점점 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눕혀 보면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다르다.
아이들에 잘 못하는 부모나 제대로 가정교육을 시키지 않는 부모의 뉴스가 계속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자신들이 부모에게 받은 만큼보다 더 이상의 것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나 아내도 부부가 제 1순위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 1순위에 뒤지지 않는 만큼 아이들의 순위가 있다. 내 아이들이고, 내 핏줄인데 그렇게 함부로 할 수는 없지 없다. 심지어 남의 아이들도 그렇게 못하는데 내 자식을 막 키울수도 없고 한가지라도 더 해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아무튼 대견한 아들녀석을 보면서 젖몸살을 하는 아내가 빨리 건강해 지기를 바라는 오늘이다.

딸아이때는 한국에서 촬영을 했고 돌 전에 사진을 찍는 바람에 울고 해서 4시간정도 걸렸다고 하고, 돌 지나서 찍는게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번에 아들 녀석은 돌이 지나고 14개월째에 아오야마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사진만 찍었다. 원본 씨디를 받아서 한국에서 앨범 제작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한살 지나서 찍으러 가니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가만히 앉게 하고 돌아서면 벌써 일어나서 걸어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모자 쓰는 것도 싫어해서 모자 씌워놓고 돌아서면 벗고 해서 힘든 촬영이었다.

 

 

 

 

 

 

 

 

 

 

 

 

 

 

 

 

 

 

 

 

 

 

 

 

 

이날따라 아들 녀석의 한복은 발이 가려서 계속 걷어주어도 줄줄 내려오는 바람에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와이프 말대로 옷 한벌정도 더 찍었으면 좋았겠다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본다. 그래도 이렇게 자라준 두 아이에게 고마울 뿐이다. 아울러 이렇게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는 4월부터 딸아이가 다닐 유치원에 와이프가 가서 원복을 찾아오는 날이었다. 원복이라고 해도 그안에 들어가는 것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스타킹에 신발에 모자, 가방까지 완전히 한 세트였다.
거기에 다른 가방 4종류는 집에서 만들어가야 하니... 와이프가 열심히 만들어서 지금은 3개를 만들고 1개만 남아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원복을 입은 모습을 웹캠을 통해서 양쪽 집에 보여드렸더니 좋아라 하신다. 내가 보아도 이제는 어린이가 된 것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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