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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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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지난 7월 26일은 우리 학과의 여름 합숙이 없어져서 무언가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바베큐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까지 비가 오고 흐린 날이 계속되어서 많이 걱정을 했는지 그날은 너무나 날이 좋아서 탈이었다. 나중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보니 전부 살이 타서 벌겋게 되어 있었다.
아침 10시부터 준비해서 실제로 먹기 시작한 것은 12시쯤 되어서부터였다. 먹고 마시고, 잔디밭에서 맨발로 노는 등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저녁 8시까지 했다고 한다. 아이가 있어서 4시 조금 넘어서 아내와 같이 돌아왔지만, 재미있었다. 가족 모두 벌겋게 되어서 조금 고생했지만, 아이가 가장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다. 하루종일 물놀이를 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수돗가에서.......
단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밑이 부어 오른데다 아이가 비벼서 균이 들어가서인지 상태가 안 좋아서 피부과에 가는 상황이 되었지만..........
나의 계획 Top5
 
계속해서 비가 오는 날씨가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너무나 맑은 날씨에 오히려 너무 더워서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면서 10시부터 준비하는 사람들과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나의 준비가 서툴러서 그랬는지 실제로 바베큐장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 정도였다. 서둘러서 불을 피우고, 먹을 것 준비를 하는 와중에 1시가 지나니 천둥이 제법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건만, 그 희망도 무너져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간이로 비닐 장판으로 가리고는 있었다고 하지만, 다들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한시간 정도 비가 내렸을까? 그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나 맑은 날씨에 다들 분해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유학생들도 자기 과를 떠나서 그리고 1학년 2학년간에 서로 몰랐던 점도 얼굴을 익히는 차원에서는 좋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이 바쁜 관계로 참가를 못한 점이 아쉽지만......
바베큐를 마치고는 우리집으로 와서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술 한잔씩들 하면서 씻을 사람은 씻고, 옷 갈아입을 사람들은 갈아입고....
너무나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술이 약해서 조금은 졸린 상태였지만.
이러한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얼마전에 초등학교 동창이 왔다 가더니 이번에는 일본에 와서 일본어학교 시절에 사귀었던 친구가 가족여행으로 일본에 왔다. 친구와 와이프, 어머님, 처제, 애들 2. 총 6명의 대부대가 이동을 하니 힘들 것이다. 그제 일본에 와서 어제 하라주쿠에서 그 친구 가족과 우리 부부, 우리 애 총 9명이 만났다.
많은 인원들이라 처음에 장소를 갭으로 정했고, 그곳에서 나와서는 밥을 먹으러 갔다. 소바집에를 갔는데, 생각보다 맛있는 집이 아니어서 좀 미안했다. 간만에 만나는데 제대로 대접도 못 한 것 같고......
그 친구는 오늘 디즈니랜드에 간다고 했다. 오늘 일기예보에 흐리다고만 나오더니 지금은 해가 나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어제 하라주쿠에서 저녁무렵 비가 내려 좀 걱정이 되었겄만.......
짧게 왔다가는 여행이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그제가 5월달에 신청한 도영주택 추첨일이었다. 어제 근무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와서 흥분된 목소리로 인터넷에서 확인했는데, 되었단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작년 11월에 처음으로 도영주택을 신청하고 경쟁률이 14대 1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졌다. 처음으로 신청하는 것이기도 하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해서 가족대상으로 하는 것은 5월과 11밖에 없는 관계로 이번에도 5월에 신청을 했었다.
신청을 하면 나중에 엽서가 날라온다. 자신이 신청한 집의 번호와 신청접수번호가 같이 적혀져 있는 것이 오는데 43번이었다. 최소한 한집에 43명 이상이 신청을 한 것이다. 어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53대 1이었다. 그런데 그것에 당첨이 되다니. 복권이 맞은 것이다.
물론 일반 도영주택을 신청한 것은 아니고 젊은 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10년만 살수 있는 것을 신청했다. 10년만 살아도 그게 어디인가. 지금 내고 있는 월세가 10년간 반 이상으로 줄어드는데.
도영주택은 수입이 올라가면 거기에 따라서 연 2%정도 월세가 올라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공단주택에 비해서 반 이상이 깍이게 되니 내년에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나는 우리 집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이다.
당첨이 되었다고 금방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심사가 다시 있고, 주택 설명회등도 있고 해서 정식으로 들어가는 것은 5개월에서 1년이내이다. 지금부터 심사등을 하니 빨라야 내년초에나 들어갈 수 있다.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지금과 비슷한 크기의 집으로 싸게 가는만큼 기쁘다. 장소도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토시마엔 앞이다. 역에서도 걸어서 5분에서 7분정도 걸릴려나? 실제로 어떤 곳인지 내일 아내와 같이 가보기로 했다.
올해는 여러가지로 행운이 우리 가족에게 오는 것 같다. 둘째 아이도 생겼고, 도영주택도 당첨이 되고, 여름에는 아버지,어머니가 처음으로 일본에 오시고 등등..........
모든 일이 첫 아이가 생기고 잘 풀리는 느낌이 든다. 첫 아이가 복동이인것 같다. 이쁘게 자라는 우리 아이와 둘째아이때문에 입덧이 심한 아내를 보면서 오늘도 아침 일을 하고 있으니, 나만 못된 남편이고 아빠인 것 같다. 어제도 늦게 들어가서 아이의 자는 얼굴만 볼 수 있었고 오늘도 아침 일찍 출근하는 관계로 아이의 자는 모습만 보았다.
이제 슬슬 퇴근할 시간이 되었으니 일찍 들어가면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겠다. 내일은 쉬는 날이기도 하니 세일을 하고 있는 GAP에 갔다가 토시마엔에 있는 주택을 보고 왔으면 하는데 비가 안올려나 모르겠다.
일본에 사시면서 도영주택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사이트에서 알아보시기를....
http://www.to-kousya.or.jp/
7월에는 직접 도청에 신청할 수 있는 집으로 20가구를 추첨한다고 한다. 작년에는 없던 것이니 나와 같이 조금이라도 월세를 줄이고자 하시는 분들은 신청하셔서 복받으시기를 바란다.
어제는 일을 끝내고 서둘러서 신주쿠로 나갔다. 6시 반에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동창이었던 친구. 그제 일본에 와서 오늘 오사카에 가는 관계로 어제만 시간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24년전쯤이니까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이자카야에서 술한잔을 했다. 1차도 간단하게 하고, 2차도 신주쿠 역앞에 있는 Kirin City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잔 했다.
다른 친구들도 잘들 지내고 있는 듯 하다. 다들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름도 가물가물거리고 얼굴이나 보아야 제대로 알아볼려나. 연말에 한국에 가게 되면 그때쯤해서 망년회를 한다니 그때가 기다려진다. 얼른 다른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
4년전에도 한국을 비롯해서 일본도 떠들썩했다. 올해는 그때에 비하면 조용한 느낌이 들지만,
그제의 일본전에 이어서 어제의 한국전은 4년전의 열기를 다시 느낄수 있게 해 준 경기였다.
시간대가 시차의 관계로 늦은 시간에 하지만, 우리나라를 응원하는 마음은 내가 한국에 있던,
일본에 있던 아니면 다른 나라에 있던 상관이 없는 것 같다.
4년전에는 근무하는 곳에서 한국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늦은 시간대니까 근무처에서 응원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언제나 그쪽에 신경이 쓰인다.
전반에 너무나 무기력한 축구를 보면서 혼자서 욕하고 분해하고, 후반의 역전을 보면서 혼자서 기뻐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 2경기나 예선이 남아있지만, 잘 하리라 믿는다.
오타쿠, 바꿔서 말하자면 매니아층은 일본처럼 다양한 나라도 없다고 생각한다.
조그마한 것,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수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아키하바라로 대표되는 오타쿠족들의 생활은 우리나라에 코스프레 킷사(일명 모에카페)가 들어갈 정도로 이제는 다른 나라의 문화로도 침투를 하고 있다.

실제로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조사한 매니아소비자층(오타쿠층)은 비지니스적 가치에 관한 조사연구를 하여 애니메이션,코믹등 주요 12분야에 대해서 실시되었다. 인터넷에 의한 앙케이트 조사를 기초로 오타쿠층의 시장규모를 분석한 결과, 2004년은 12분야전체에 총 172만명, 금액으로는 4천1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分野 人口(注1) 金額(注2)
コミック(코믹) 35万人 830億円
アニメーション(애니메이션) 11万人 200億円
芸能人(연예인) 28万人 610億円
ゲーム(게임) 16万人 210億円
組立PC(조립 PC)
19万人 360億円
AV機器(AV기기) 6万人 120億円
携帯型IT機器(휴대형 IT기기)
7万人 80億円
自動車(자동차) 14万人 540億円
旅行(여행) 25万人 810億円
ファッション(패션) 4万人 130億円
カメラ(카메라) 5万人 180億円
鉄道(철도) 2万人 40億円
合計(합계) 延べ172万人 4,110億円

실제로 그 시장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잡동사니를 모으는 사람도 있다. 최근 들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매니아층의 시장이 소규모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 된 것으로 한가지에 대한 매니아층의 몇명, 몇십명단위로도 형성이 되고, 인터넷을 통해서 그러한 것들이 매매되어지고 있으니 비지니스 시장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장을 눈여겨보고 틈새를 노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집으로 김치냉장고가 배달되어 왔다. 일본에 살면서 김치냉장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점점 늘면서 언젠가는 사고싶다고 와이프가 이야기하더니, 여러가지 사정으로 사게 되었다.
가장 사게 된 원인은 지난번에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를 냉장고에 다 안 들어가서 따로 보관하였다가 많이 시어져서 일부분을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금치를 그렇게 아깝게 버리고 나니 와이프는 더욱 마음이 상했나 보다. 그런 것도 있고 일본에서 산 냉장고가 우리나라보다는 아무래도 작은 관계로 식품등이 다 안들어가는 문제점도 있고 해서, 와이프와 상의해서 사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다고 생각이 들지만, 일본에서 김치냉장고를 가지고 있는 집은 한국사람 집뿐일 것이다. 딤채와 삼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딤채를 더욱 알아주니 이번에 구입한 것도 딤채이다. 120L짜리로 와이프가 다음주에 와봐야 알겠지만, 꽤 쓸모있으리라 생각된다.

2년만에 한국에 갔다 왔다. 재작년에 아이가 태어날때 여름에 다녀오고 나서는 아이와 와이프는 매년 들어갔다 왔지만, 금전적인 문제보다는 내 휴가스케쥴등이 안 맞아서 못 들어가다가 이번에 처제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에 맞추어서 아이와 와이프는 먼저 들어가서 여러가지 일처리등을 하고 나는 그저께 업무를 마치고 바로 하네다로 직행.
밤 8시 비행기라 6시 30분정도까지 도착해서 수속밟고 안에 들어가니 7시가 되기 전이었다. 이제까지는 계속 나리타만 이용하다가 처음으로 이용하는 하네다공항은 정말로 한산했다. 국제선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는 것도 있고, 그 반면 시내까지의 교통이 좋다는 점에서 더 비싼 가격등이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탄 비행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2시간정도의 여행으로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서 처갓집에 도착한 것이 밤 12시. 지하철로 열심히 갔는데 김포공항과 정반대의 곳에 있는 관계로 그런 시간이 되었다. 그때까지 안 자고 나를 기다려준 식구들과 특히 나를 가장 반갑게 맞이해준 우리 딸아이의 웃음은 살인적이었다.
제대로 회포도 풀지 못하고 잠을 잔후 어제는 체제의 결혼식이라 아침부터 전 식구들이 머리하랴 옷입으랴 바쁜 오전시간을 보내고 결혼식을 올리는 성당으로 출발. 거기서 2년만에 아버지, 어머니를 접할 수 있었다. 나같은 불효자식이 있을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그런지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늙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내 부모는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내 부모도 장인,장모님도 연세를 드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인어른도 다리가 아프신 와중에도 우리 일을 신경써 주시고 장모님도 아이의 투정을 잘 받아주시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 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이를 낳아야 부모의 내리사랑을 안다고.......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았던 나는 그러한 것을 느끼기에는 많은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처제 결혼식도 무사히 끝나고 아버지,어머니는 먼저 집으로 가시고 나는 다시 처갓집으로 돌아와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식구들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집으로 갔다. 2년만에 찾는 고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조금 전이어서 그나마 부모님과의 짧지만 정담을 나눌 수 있었고, 집안일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듣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오전중에 와이프와 둘이서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집에와서 점심을 먹으니 공항으로 향할 시간이 되었다. 너무나도 짧았던 2박3일의 한국귀국이었다. 아이몰래 공항에서 헤어지는 것도 조금은 머리를 써야 했고(안 그러면 엄청 우니까.) .
집에 밤 9시쯤 도착해서 양쪽에 전화를 드리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아이의 모습은 나를 눈물나게 할 정도였다. 와이프도 중요한 사람이고 딸아이도 중요한 사람이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 틀린 것 같다. 와이프때도 헤어질때 눈물이 날 것 같더니 아이를 보는 느낌은 더욱 그렇다.
2주뒤에는 두 사람다 내 곁으로 오기 때문에 2주만 참으면 되지만, 매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마음도 허전하고, 모든 것이 공허하다. 10년동안 어떻게 혼자 살았나 싶다.
얼른 2주 뒤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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